잡동사니

23.02.13

슈슈또잉 2023. 2. 13. 12:17

23년 2월 13일 월요일, 날씨 미세먼지 많고 흐림, 그러나 온도는 영상으로 올라옴

 

주말 내내 너무 바빴다.

토요일은 조카들과 썰매장을 갔고, 일요일은 강아지와 운동장을 다녀왔다.

그러다보니 일요일엔 자연스레 쇼파와 한몸이 되어버렸다.

 

난 강아지 모임을 한다.

반려인으로 산 세월이 벌써 21년째인데, 첫번째 강아지에게는 못 해준 것들을 지금 키우고 있는 비서에게 다 해주고 있다.

마치 면죄부처럼-

 

예삐한테는 해주지 못했던 매일매일 산책하기와 매일 저녁 새로운 놀이를 해주기, 그리고 주말마다 목줄을 풀고 신나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까지,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친구들은 나보고 대단하다고 한다.

어떻게 강아지한테 그렇게 까지 하냐고-

하지만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고 보살피겠다 약속을 했으니 이 정도는 별 것 아닌거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비서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귀여운 아이이다.

이 아이를 데리고 오려고 강아지를 한번도 키워보지 않은 신랑을 1년간 설득을 하고, 민간자격증인 반려견훈련사 자격증 까지 땄다.

낯가림이 심하지만 용감한 아이.

가끔 비서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내게 머리를 툭 기대는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예삐를 키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어린 나이에 강아지가 키우고 싶어 엄마를 졸랐고, 그렇게 크리스마스 선물 처럼 온 아이가 예삐였다.

예삐는 엄마젖을 떼자 마자 우리집으로 와서 이유식 부터 먹었었는데 (사료 불린 것)

엄마는 항상 예삐를 안고 이곳 저곳을 다녔다.

그렇게 예삐도 커갔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중고등 학생때는 공부를 하느라 (그렇다고 잘 하지도 않았으면서 ) 20대가 되어서는 노느라 예삐는 조금 뒷전이었다.

그러다 내가 29살때 예삐가 17살의 나이로 강아지 별에 갔고, 그때 참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었다.

다니던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은 그래도 참 오래 건강하게 살았다며 날 위로해 주셨지만 당장 내 곁에 내가 마음 둘 수 있는 하얀색 생물체 하나가 사라졌다는 그 상실감은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2016년 10월 6일 이후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 이 악물고 버텼다.

길을 가다 예삐를 닮은 강아지를 보면 눈물부터 났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3년을 꾹 참아왔지만 마음 속 깊이 어느 한 구석이 허전했던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비서가 왔다.

 

펫샵에서 데리고 오고 싶지 않았다. 

(예삐는 가정분양이었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내가 12살때는 지인의 강아지가 새끼를 낳아 분양을 받아 오는 것이 꽤나 흔했다)

그리고 너무 어린 강아지는 내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태어난지 두달 밖에 안된 애기 강아지는 12살의 내가 아닌 엄마가 케어 했기에 ) 그래서 선택해 데려 온 아이가 생후 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입양을 못 가고 있는 비서였다.

 

우리집에 처음 발을 디딘 날

초롱초롱 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집안 곳곳을 둘러 보던 아이였다.

춘천에서 서울까지 차로 오는 동안에도 한번을 낑낑 거리지 않던 아이가 비서이다.

6개월, 가장 똥꼬발랄할 시기였지만 비서는 너무나도 얌전 했고, 오빠는 어쩜 이렇게 얌전하냐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비서가 우리집에 완전히 적응 하고 난 뒤 180도 바뀌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흥미를 느껴 물어 뜯는 아이였고, 싫은건 싫다고 표현도 단호하게 하는 강아지.

새로운 것에 적응 하는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믿고 지켜보면 그만큼 잘 적응 하는 강아지가 비서이다.

 

그렇게 비서를 반려한지 햇수로 벌써 3년을 가득 채웠고, 비서의 나이는 4살이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난 마치 예삐에게 못 해줬던 것들을 온통 비서에게 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아니 사실 만족하지 못한다.

100%가 존재 하기는 하는 걸까?

아마 난 이 아이가 지구로 온 이 소풍을 끝내고 강아지별로 돌아갈때까지 만족하지 못 할 것이다.

 

겉으로는 단호한척 하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한 가득인데, 너로 인해 내가 얻는 것들이 너무나도 큰데 너는 나로 인해 얻는 것이 있는지, 

나는 이렇게 너 덕분에 행복하고 삶이 풍요로워지는데 너는 어떤지-

내가 너에게 해주는 것들이 너에게 충분한 만족감과 행복을 안겨주는지, 궁금한 것들은 너무 많은데 물어 볼 수가 없어서 그저 출근 전 별일이 없는 이상 매일 산책을 해주고, 주말마다 멀리 나가서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매일 비서의 화장실과 밥그릇 물그릇을 청결하게 유지해 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전해본다.

 

난 아직도 비서가 처음 바다를 본 날을 잊지 못한다.

앞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당황스럽기도 무섭기도 했을텐데 모래사장에서 한참을 보고 있다가 한걸음 나아가 파도에 실려오는 바다 내음을 흥미롭게 맡던 그 모습을,

그래서 나는 앞으로 더 부지런하게 또는 유난스럽게 비서에게 많은것들을 보여주고 경험 할 수 있게 해주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귀여워서 예삐를 키우던 12살의 수진이는 29살이 되었을때 너무나도 많은 후회를 하였지만, 앞으로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을 한번 더 다짐하며 비서의 지구별 소풍이 좀 더 갚진 소풍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먼 훗날 비서가 이 소풍을 마치고 강아지별로 가서 예삐를 만났었을때, 엄마가 너에게 해주지 못 했던 것을 나에게 해주었다며 지금 지구별은 어떤지 알려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