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2일 수요일.
어제는 우리 부부의 결혼한지 1600일 되는 날이었다.
난 기념일을 딱히 챙기는 성격이 아니다, 오빠랑 연애할때도 우리는 100일만 챙기고 그 뒤부터는 1주년을 챙겼다.
하지만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무시하는 성격도 안된다.
"우리 벌써 만난지 200일이나 됐네? 오늘이 우리 200일 되는 날이래" 라고는 말을 하는 편
그럼 이 문장 하나로 평범했던 데이트가 뭔가 특별해지는 기분이랄까
어제도 그랬다.
난 숫자에 약해 기념일 어플을 사용하는 편인데
어제 어플에서 [결혼기념일의 1600일 입니다] 라는 알림이 와있어서 오빠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래? 그럼 우리 오늘 외식이나 할까?" 라고 하길래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왜냐면 요즘은...내 월급 빼고 모든게 다 오르는 시기이니까...게다가 화요일이기도 하고,
비서도 혼자 오랫동안 있었고-
(난 대체로 밥은 집에서 먹는걸 좋아한다)
그래서 어찌저찌 오빠랑 얘기를 해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는 고기를 사러 갔는데 우리가 자주 가던 정육점은 문을 닫아서 어쩔 수 없이 마트를 가 평소처럼 삼겹살을 구워먹을까 하다가 오랜만에 오리고기를 먹었다.
평범한 맛이었는데 어제는 유독 맛있었다.
아마 결혼한지 1600일이 되는 날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합리화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난 특히나 합리화를 잘 하는 편이다-
"오늘은 날도 좋으니까 좀 멀리 걸어볼까?"
"내 생일인데 비가 와, 나 빗소리랑 비냄새 좋아하는거 어떻게 알구"
"오늘 퇴근길에 너무 예쁜 노을을 봐서 나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
등등, 남들이 들으면 우스워 보일 수 있는 얘기이지만 난 내 하루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특별했으면 좋겠으니 저런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혹자들은 나에게 머릿속이 꽃밭이라고들 얘기 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좋아한다고-
혹은 너무 기계적인 리액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럴 수 있다. 남들이 봤을땐 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난 정말 그런 사소한 것들이 매우 크게 느껴지는 편이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니 비서가 유독 컨디션이 좋아서 날 반겨주었고 (우리 부부는 비서와 따로 잔다)
출근을 하려고 준비를 하다가 잠깐 집을 점검한다고 뒤돌아 봤는데, 햇살이 너무 따스하게 우리 집을 비춰주었다.
오빠는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하는데 잘 도착하였다고 연락이 왔고
내가 출근하는 지하철은 만원이었지만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자리가 나서 편하게 앉아 올 수 있었다.
어플로 미리 시켜둔 커피가 바로 나와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고
엘레베이터를 타려 했는데 바로 내 앞에서 올라가버려서 조금 속은 상했지만 그 참에 찌뿌둥한 몸을 한번 더 풀 수 있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내 스트레스의 원인이 있겠지만, 컴퓨터 배경화면을 비서로 해둔 덕에 금방 기분이 풀릴 수 있을 것이다.
한치앞을 모르고 사는게 사람인데, 지금 이 순간이라도 행복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겠지-
(이것도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더라)
아마 오늘은 감사하게도 어제와 같을 것이다.